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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서 '명품' 팔고 백화점은 과일·채소…유통 공룡' 변신 빨라진다
24일 이마트타운 월계점. 소비자들이 평일 오전에도 쇼핑카트를 끌고 의류 매장을 둘러보거나 서점에서 책을 읽으며 여가를 보내고 있다.(위쪽) 1층의 한 화실(化室)에서는 꽃꽂이 수업이 한창이다. 2020.7.24/뉴스1© 뉴스1 최동현 기자


(서울=뉴스1) 최동현 기자 = "유통업의 경쟁 상대는 테마파크나 야구장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10년 전 취임식에서 한 말이다. 백화점과 대형마트가 살아남으려면 '상품'이 아닌 '시간'을 팔아야 한다는 파격 주문이었다.

신세계그룹은 일사불란하게 '수술 준비'에 들어갔다. 당장 내부 보고서에서 '평효율' 단어를 빼버렸다. 평효율은 '매장 1평당 매출'을 뜻하는 지표다. 수십년간 백화점과 대형마트의 성과를 측정하는 척도로 쓰였다. 더는 공간을 진열대로 꽉 채울 궁리만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았다.

이마트의 빈 공간에는 벤치와 카페, 서점이 들어섰다. 신세계백화점은 1층 명품 매장을 빼고 과일과 채소를 팔기 시작했다. 지하에 있던 아쿠아리움은 백화점 꼭대기로 올렸다.

경쟁사도 바쁘게 움직였다. 롯데하이마트는 지난 1월 첫 체험형 매장 '메가스토어 잠실점'을 열었다. 매장을 테마파크처럼 꾸미고 가전은 '덤으로 사는' 부가 서비스로 재배치했다. 현대백화점은 식품관을 통째로 배송하는 온라인몰 '투홈'을 열었다.

지난 100년 동안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던 오프라인 '유통공룡'들이 멸종 위기를 직면하면서 일제히 '진화'를 시작한 것이다.

 

 

 

© News1 김일환 디자이너


◇"시간을 팔아라"…이마트 월계점, '체험' 늘렸더니 매출 40%↑

"이마트에서 구찌(CUCCI)를 파네?"

2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마트타운 월계점의 6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0% 증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대형마트를 찾는 발길이 뚝 끊긴 점을 고려하면, 첫 달부터 순풍을 달았다는 평가다.

이마트타운 월계점은 지난 5월28일 리뉴얼 재개점한 첫 '미래형 이마트' 모델이다. 구(舊) 월계점을 완전히 뜯어고쳐 이마트 매장 비중을 기존 80%에서 30%로 확 줄였다. 나머지 여백은 벤치와 카페, 꽃집, 서점, 취미 공간으로 꾸몄다. 상품은 뒤로 빼고 여가와 체험을 앞세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월계점의 첫발을 내딛는 순간 이마트는 사라지고 널찍한 '테마파크'가 펼쳐진다. 입구에는 스타벅스 매장과 음식점이 줄지어 서 있다. 건너편에서는 꽃이 가득한 화실(化室)에서 꽃꽂이 수업이 한창이다.

1층 광장 '아트리움'에는 피아노 한 대가 전시돼있다. 전 세계에 단 3대만 존재하는 명품 피아노 '플레옐 리리코'다. 사람들은 광장에 모여 작품을 감상하거나,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책을 읽었다. 1층 맨 구석에 가서야 '숨은' 이마트 매장을 찾을 수 있다.

2층은 아예 서점, 카페, 패션, 취미 공간으로 채웠다. 고객들은 쇼핑 카트를 세우고 서점에서 책을 읽거나, 자녀와 함께 놀이공간 '바운스 어드벤처'에서 놀이를 즐겼다. 백화점처럼 의류 매장을 둘러보거나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연인도 눈에 띄었다.

심지어 '명품 매장'까지 입점했다. 한 30대 여성 소비자는 "어머, 여기서 구찌를 파네?"라며 반가운 듯 매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월계점은 전국 이마트에서 유일하게 명품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품목은 Δ구찌 Δ프라다 Δ발렌시아가 Δ버버리 Δ알마니 등 15종에 달한다. 병행수입 제품이지만 매장 A/S도 지원한다. 가격은 정상가보다 약 30% 저렴하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매장'을 줄이고 '여백'을 늘린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도"라며 "치밀한 '역발상' 마케팅으로 지역 수요를 완전히 흡수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월계점 반경 1.5㎞ 내에는 2만5000세대의 아파트가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평일에도 책을 보거나 취미 생활을 즐기러 오는 주민들이 확연히 늘었다"며 "1인당 체류 시간도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 1층 식품전문관 전경.(오른쪽·신세계백화점 제공) 22일 반찬 매장에서 소비자들이 반찬을 고르고 있다.(왼쪽). 2020.7.22/뉴스1© 뉴스1 최동현 기자


◇신세계百 1층서 과일·채소 팔고…하이마트는 '테마파크'로 변신

백화점과 가전매장도 앞다퉈 '변신'을 꾀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점은 국내 백화점 중에서 가장 파격적인 '실험'이 진행되는 점포다. 지난해 10월 건물 한 동 전체를 '생활전문관'(리빙관)으로 바꾸더니 올해 1월에는 1층을 '식품전문관'(푸드마켓)으로 리뉴얼했다.

백화점 역사상 1층에서 명품과 화장품이 빠진 적은 없다. '백화점은 1층이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만큼 가장 많은 매출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은 2개동 중 1개동을 식품에 내줬다. 이유는 간단하다. 백화점에 사람이 오지 않아서다.

신세계의 '도박'은 대성공이었다. 타임스퀘어점 1층 식품관은 평일 오전부터 북적였다. 소비자들은 1층에서 장을 보며 과일·채소를 골랐다. 유모차를 끌고 정육점에서 고기를 고르는 주부도 있었다. 건너편 명품·화장품 매장의 한산한 분위기와 달리 장(場)이 열렸다.

가격도 백화점치고 아주 비싸지 않다. 미국산 자몽은 1개에 1800원에 팔았다. 인근 대형마트에서 사려면 4개 묶음에 6980원(개당 1745원)을 줘야 한다. 한우 1+등급 등심은 100g당 1만7900원이다. 온라인몰(1만3000원~1만4950원)과 가격 차이는 4000원 안팎이다.

신도림에서 왔다는 주부 박모씨(41)는 "백화점 식품관이 가격대가 있지만 품질이 좋아 종종 찾고 있다"며 "1층을 식품관으로 꾸며놓으니까 (명품·화장품 매장보다) 부담이 덜하다"고 말했다.

'식품관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신세계 타임스퀘어점의 6월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평균 6.6% 늘었다. 가전 매출이 25%로 가장 높았지만 식음, 식품 매출도 각각 19.5%, 17.5%씩 성장했다.

롯데하이마트 '메가스토어'(Mega store)도 잇달아 '대박'을 터뜨리며 오프라인 가전 매장의 새지평을 열고 있다.

롯데하이마트 메가스토어 3개 점포(잠실·수원·안산선부)의 전년 동기 대비 매출 신장률은 평균 135%에 달한다. 올해 1월 가장 먼저 문을 연 잠실점은 코로나19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도 매출이 35% 성장했다. 안산선부점(3호점)은 재개점 1달 만에 매출이 무려 240% 껑충 늘었다.

메가스토어는 롯데하이마트의 '차세대 성장동력' 모델이다. 매장을 가득 메웠던 TV, 냉장고를 싹 비우고 카페, 네일숍, 게이밍 존 등 '생활 공간'으로 채웠다. 수원점에는 셀프 빨래방과 펫스파룸(반려동물 목욕공간)까지 있다.

본업인 가전은 소비자들의 '체험'을 더 풍족하게 만들어주는 소재로 스며들었다. 예컨대 반려동물을 키우는 소비자는 수원점으로 산책을 왔다가 펫 스파룸에서 목욕을 시킬 수 있다. 게임을 좋아하는 MZ세대(2030세대)는 게이밍 존에 마련된 컴퓨터로 최신 게임을 즐길 수 있다. 1인 가구는 밀렸던 빨래를 가져와 셀프 빨래를 하면 된다. 일단 놀러 와서 즐기고, 마음에 들면 구매하는 방식이다.

롯데하이마트는 올해까지 메가스토어를 6호점까지 늘릴 예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전의 '스펙'만 보고 구매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매장에서 놀고, 먹고, 즐기다가 마지막에 가전을 구입하는 '체험 소비'가 자리 잡았다"고 분석했다.

 

 

 

 

 

 

롯데하이마트 메가스토어 수원점© 뉴스1


◇"오프라인 '진화' 못하면 멸종한다…온라인엔 없는 '五感' 제공해야"

전문가들은 오프라인 유통업계의 '혁신'이 더 가속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종국에는 유통시장의 구조가 '프리미엄형 오프라인'과 '가성비형 온라인'으로 양극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신세계와 롯데의 오프라인 전략을 '골리앗의 복수'에 비유하면서 "온라인에서는 충족할 수 없는 '오감'(五感) 쇼핑을 무기로 이커머스에 대항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골리앗의 복수'는 디지털 기술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상황에서, 전통 기업이 선택해야 하는 생존 전략을 제시한 책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성장전략 전문 컨설턴트 토드 휴린과 와튼스쿨 맥센터 선임연구원 스콧 스나이터가 함께 썼다.

서 교수는 "신세계, 롯데가 골리앗이라면 쿠팡, 네이버쇼핑은 골리앗을 위기로 몰아넣는 다윗과 같다"며 "1~2인 가구의 증가, 소비 패턴의 변화 속에서 과거와 같은 매장 구성 방식으로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은 생존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는 "오프라인 유통공룡도 이제 진화를 해야 할 때가 왔다. 진작에 바뀌었어야 한다"며 "이커머스가 제공할 수 없는 것들, 즉 프리미엄과 체험 소비로 고객을 유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 교수는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식품'을 강화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봤다. 그는 "언택트(비대면) 소비가 많아졌지만, 식품은 여전히 직접 보고 사야 하는 상품"이라며 "수박을 살 때도 소리는 어떤지, 줄무늬는 선명한지 따지지 않나"고 반문했다.

이어 "과거처럼 싼 가격만 선호하는 경향이 사라지고 '스토리'와 '프리미엄'에 지갑을 여는 소비 패턴이 생긴 것은 오프라인 유통업에도 큰 기회"라며 "매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체험, 스토리, 브랜드를 선보이는 전략에 역량을 쏟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뉴스1 <뉴스커넥트>를 통해 제공받은 컨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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